역사속의 오늘

1956년 故 해공 선생 국민장 5월23일

한국의 독립운동가인 신익희 선생. 상하이 임시정부수립 후 내무차장 외무차장 등을 지낸 인물인데요.
 
 
<1956.05.23 故신익희 선생 국민장>
 
 
역사 속의 오늘, 1956년 5월23일은 해공 신익희 선생의 장례식이 치러진 날입니다.
 
본관은 평산이고, 자는 여구이며, 호는 해공이신 신익희 선생은 광주에서 판서 신단의 막내아들로 태어났습니다.
 
1908년 한성외국어학교 영어과를 졸업하고 일본의 와세다대학 정경학부에 들어가 한국 유학생들과 학우회를 조직하고 총무, 평의회장, 회장 등을 역임하였으며
 
기관지인 “학지광”을 발간하여 학생운동을 하였습니다.
 
1913년 졸업과 동시에 귀국하였으며 고향에 동명강습소를 열었으며 서울 중동학교에서 교편을 잡다가 1917년 보성법률상업학교의 교수가 되었습니다.
 
1919년 상하이로 망명하여 임시정부수립과 동시에 내무차장, 외무차장, 국무원 비서장, 외무총장 대리, 문교부장 등을 역임하였고
 
광복과 더불어 1945년 12월 1일 임시정부 내무부장 자격으로 환국하였습니다.
 
귀국 후에는 정치공작대 정치위원회 등을 조직하였고, 1946년 대한독립촉성국민회 부위원장, 자유신문사 사장, 국민대학교 초대 학장을 겸하다가
 
그 해 남조선과도입법의원 대의원에 뽑히게 되었습니다.
 
 
<1956.05.23 故신익희 선생 국민장>
 
 
1956년 3월 18일 신익희 선생은 민주당 대통령 후보로 지명되었습니다.
 
대통령 선거를 열흘 앞둔 1956년 5월 5일 새벽. 호남지역 유세를 위해 밤 열차로 전주에 가던 중 갑자기 뇌일혈로 서거하셨습니다.
 
 
<1956.05.23 故신익희 선생 국민장에 운집한 인파>
 
 
국민들은 그에게 애도의 185만표를 던졌고, 5월 23일 국민장으로 장례가 치러졌습니다. 정부는 신익희 선생의 공훈을 기려 1962년 ‘건국훈장 대한민국장’을 추서했습니다.
사진출처 e 영상 역사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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