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속의 오늘
1995년 국태안민(國太安民)하게 해주옵소서 12월6일
올 해는 고려대장경 간행 천 년을 맞이하는 해입니다.
고려 현종 때이던 1011년 초조대장경이 만들어지기 시작한 것을 기점으로 하는데요,
이를 기념하여 ‘대장경천년 세계문화축전’이라는 행사가 열리기도 했죠.
고려 현종 때이던 1011년 초조대장경이 만들어지기 시작한 것을 기점으로 하는데요,
이를 기념하여 ‘대장경천년 세계문화축전’이라는 행사가 열리기도 했죠.
안타깝게도 초조대장경은 몽골의 침략으로 소실되고 말았습니다.
하지만 우리에게는 750년의 세월을 함께해온 또 다른 대장경이 존재합니다.
1995년 12월 6일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등록된 팔만대장경(재조대장경)입니다.
하지만 우리에게는 750년의 세월을 함께해온 또 다른 대장경이 존재합니다.
1995년 12월 6일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등록된 팔만대장경(재조대장경)입니다.

<사진 1, 1997.3.19 국보 제32호이자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된 해인사 팔만대장경>
팔만대장경이 세계문화유산으로 등록된 날이니만큼 대장경의 우수성을 다시 한 번 새겨보는 것도 좋을 것 같은데요.
사진은 1997년 촬영된 해인사 팔만대장경입니다.

사진은 1997년 촬영된 해인사 팔만대장경입니다.

<사진 2, 1997.3.19 국보 제32호이자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된 해인사 팔만대장경>
팔만대장경 경판은 정확히 8만1258장입니다.
경판 한 장에는 한쪽에 322자씩 모두 644자가 새겨져 있다고 하니, 전체적으로는 5200만 자나 되는 셈입니다.
또 이 경판을 한 장씩 쌓으면 그 높이가 무려 3250m에 달해, 백두산보다도 높은 산이 됩니다.
하지만 팔만대장경이 위대한 건 이렇게 양적으로 방대하기 때문만은 아닙니다.
조선시대의 명필 추사 김정희가 “이는 사람이 쓴 것이 아니라 마치 신선이 내려와 쓴 것 같다”고 감탄했을 정도로
팔만대장경은 그 아름다움을 자랑합니다.
1800여 명이 동원되어 글씨를 새겼을 것으로 추정되지만 마치 한 사람이 쓴 듯 글씨가 일정하고,
5200만자의 글자 중 오탈자가 거의 없다는 것도 특징입니다.
썩기 쉬운 목판이 750년 동안 고스란히 옛 모습 그대로 유지되고 있다는 사실도 선조들의 뛰어난 기술과 지혜를 보여줍니다.
조선시대의 명필 추사 김정희가 “이는 사람이 쓴 것이 아니라 마치 신선이 내려와 쓴 것 같다”고 감탄했을 정도로
팔만대장경은 그 아름다움을 자랑합니다.
1800여 명이 동원되어 글씨를 새겼을 것으로 추정되지만 마치 한 사람이 쓴 듯 글씨가 일정하고,
5200만자의 글자 중 오탈자가 거의 없다는 것도 특징입니다.
썩기 쉬운 목판이 750년 동안 고스란히 옛 모습 그대로 유지되고 있다는 사실도 선조들의 뛰어난 기술과 지혜를 보여줍니다.

<사진 3, 1997.3.19 팔만대장경판을 소장하고 있는 경남 합천 해인사>
고려대장경은 몽골의 침략으로 고려가 가장 어려웠던 시기에 국태안민(國太安民)을 기원하며 만들어졌다고 하는데요,
선조들의 그 기원이 오늘날에도 힘을 발휘했으면 좋겠습니다.
사진출처 e 영상 역사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