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속의 오늘

1962년 농촌문맹퇴치 계몽 활동 1월11일

누구나 쉽게 소리 나는 대로 쓰고 쓰여 있는 대로 읽을 수 있는 글자.
 
 
 우리의 자랑인 한글이죠.
. 하지만 해방 직후에는 우리글을 쓸 줄 모르는 사람들이 많았다고 하네요.

  그 때문에 전국적으로 문맹퇴치운동이 벌어졌는데요.

  오늘 소개해드릴 사진은 1960년대 대학생들의 농촌문맹퇴치 계몽활동 모습을 담고 있습니다.

 
<사진1, 1962.1.11 농촌문맹퇴치 계몽활동에 나선 대학생들이 주민들에게 한글을 가르치고 있다>


 옹기종기 모여앉아 책을 들여다보고 있는 아낙들의 모습이 정겨운데요.

해방 이후 우리글인 이 한글을 되찾으면서 문맹퇴치운동은 국가의 중요한 정책과제로 떠올랐습니다.

이는 1950년대 ‘전국 문맹국민 퇴치 5차년 계획’과 1960년대 초 대학생들의 농촌계몽운동으로 이어졌지요.

 한글 교육은 주로 농한기를 이용해 범국가적 차원에서 실시되었습니다.

그 결과 해방 당시 약 78%에 달했던 문맹률이 1960년에는 28%로 낮아졌습니다.

이런 적극적인 문맹 해소의 노력은 국민들의 선거 참여율을 높여

민주주의의 기초를 다지는 데에도 큰 역할을 했다고 하네요.

 
<사진2, 1962.1.11 한데 모여 국민체조를 하고 있는 주민들>
 
 
 2008년 국립국어원이 조사한 우리나라의 문맹률은 1.7%라고 합니다.

반면 전세계 평균 문맹률은 무려 20%에 달한다고 하는데요.

나라를 되찾자마자 벌어진 국가 차원의 문맹퇴치운동과 한글의 우수성이 함께 빚어낸 결과겠죠.
사진출처 e 영상 역사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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